경기도 귀농귀촌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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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준비가 실패 없는 ‘귀농’을 만든다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 / 유진수 님
유진수 씨는 농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2년차를 맞이하는 새내기 농부다. 그는 30년 다닌 직장을 은퇴하고, 새로운 직업으로 ‘농부’를 택했다.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농부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_김솔 / 사진_전민재



‘100세 시대’. 살아가야 할 날들은 늘어났지만 은퇴 시기는 앞당겨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정년은 남자 52세, 여자 47세이며 전체 평균은 49세라고 한다. 50세가 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퇴자들 중 절반 이상은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한 뒤 시작되는 ‘인생 2막’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유진수 씨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농협에 근무하던 그는 정년퇴직이 가까워지자 다가오는 인생 2막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것이 귀농이었다. 도시에 사는 많은 이들이 퇴직 후 시골 생활을 꿈꾼다. 귀농·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는 이유다. 2010년 전국에서 귀농·귀촌한 가구 수는 4,067가구에 불과했지만, 4년 뒤인 2014년에는 4만 4,586가구로 약 37%나 증가했다. 하지만 그중 30%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역귀농’을 택한다고 한다. 그만큼 귀농·귀촌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전 충동적으로 귀농을 결정하지 않았어요. 은퇴하기 몇 년 전에 결심을 했고, 그때부터 준비에 돌입했죠. 직장을 다니던 중에 퇴직금 중도 정산을 했는데, 그 돈으로 땅도 미리 사두었어요.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이야기입니다.”
유진수 씨는 농업에 대해 문외한이 아니었다. 농업학교를 졸업했고, 가평농업기술센터에서 잠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은퇴 후 직업으로 농부를 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으니까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할 수 있었죠. 땅도 그냥 매입한 게 아니에요. 여러 가지 조건을 따졌죠. 무엇보다 물을 대기 좋아야 해요. 제가 산 땅은 근처에 관정이 있었기 때문에 농사짓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위에 이런 ‘관정’이나 ‘보’가 없으면 양수기로 물을 퍼 올려야 해요. 그러려면 설비 분야에도 지식이 좀 있어야겠죠? 이렇게 사전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겨우 스타트 선에 설 수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귀농하겠다’고 하고 저질러버리면 잘될 리가 없는 거죠.”

귀농을 도와준 클린농업대학
유진수 씨가 귀농을 준비하며 크게 도움을 받은 곳이 있다고 한다. 바로 ‘클린농업대학’이다. 클린농업대학은 가평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농업학교’다. 가평농업을 이끌어갈 농업경영전문가를 양성하고자 2007년 첫 문을 열었으며, 친환경농업과, 생태농촌관광과, 농업CEO과의 3개 과정이 있다. 유진수 씨는 이중에서도 친환경농업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이곳에서 토양학, 유기농업, 천연농약제조 기술, 농산물 마케팅 등 농업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을 배웠다. ‘농사’라고 늘 같은 방식만 고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거니와, 유행하는 작물이 종종 바뀌기도 한다. 유진수 씨는 이 클린농업대학에서 농업에 관한 최신 정보를 다양하게 습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클린농업대학을 통해 가평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어요. 많은 도움이 됐죠. 앞으로는 견학을 많이 가보고 싶어요.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지 보고 싶거든요. 다른 곳에서는 온도시스템이라든지 방제시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클린농업대학의 덕을 톡톡히 본 유진수 씨지만, 가평군의 농가 지원 체계에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기준에서 벗어나면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농가 규모가 아주 크거나 작아야 해요. 기준이 그렇게 정해져있기 때문이죠. 거기에서 벗어나면 지원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저 같은 중간 규모의 농가들은 답답할 때도 있어요.” 유진수 씨는 중규모 농가들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갓 귀농한 신입농부들이 좀 더 ‘수월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베테랑 ‘농업인’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예비 귀농인으로서 많은 준비를 해온 유진수 씨. 그런 그도 본격적인 농사일에 나서자마자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고 한다. 아무리 이론을 두루 습득했어도 실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체력적으로 부담이 컸다. 20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틈틈이 운동을 해온 그에게도 농사는 버거운 일이었다.
“일단 지식은 있었으니까 폼은 그럴 듯 했죠. 그래도 알고 보면 실수투성이였어요. 작년에는 한여름에 고추를 따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보통 뜨거운 게 아니더라고요. 농사를 지으면서 살도 8㎏이나 빠졌어요.”
애써 키운 배추가 ‘무름병’에 걸리기도 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약을 쳐야 병을 예방할 수 있는데, 시판되는 방제기계는 노즐이 너무 길어 약이 골고루 들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평소 손재주가 있고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 노즐을 연결하는 고리를 구입해 밭의 중간에 따로 노즐을 이은 것이다. 이때도 압력이 너무 세서 노즐이 터지는 등 사소한 실수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방제기계를 ‘업그레이드’해, 지금은 한 번에 6고랑까지 농약을 뿌릴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밭에 꼭 들어맞는 ‘맞춤형 방제시설’이 탄생한 것이다. 유진수 씨가 개발한 ‘아이디어 농기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땅에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을 때에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농기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자전거 바퀴를 활용한 것으로, 굴리기만 하면 땅에 일정한 간격의 구멍이 생긴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인터넷도 많이 찾아봤어요. 블로그를 보면서 저와 비슷한 문제를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참고했죠.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제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공유하고 있어요. 혹시 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죠.”
유진수 씨에게 지난 일 년은 ‘시행착오’의 해였다. 그러나 그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달성한 작년 매출은 총 2천만 원 정도다. 올해 총 매출은 2천 5백만 원 정도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수익이 좀처럼 나지 않아 모종사업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워낙 투자를 많이 했어요. 처음 일을 시작하다보니 아무래도 이런저런 지출이 많았죠. 올해도 마찬가지이긴 해요. 농업인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추고 자리를 잡으려면, 앞으로 5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농업을 시작한지 이제 막 2년차. 그렇지만 유진수 씨는 ‘신입 농부’답지 않다. 문제점을 그때그때 해결하며 척척 농사일을 해나가고 있다. 이는 그의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귀농은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미리 생각해보고 그 해결책을 마련하고 대비해야 한다. 유진수 씨는 이 단계를 꾸준하게 밟아나갔다. 자신이 개발한 농기구를 다루는 손길은 흡사 베테랑 농부를 보는 것 같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며 진정한 ‘농사꾼’으로 거듭날 그의 모습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하다. 유진수 씨의 ‘인생 2막’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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